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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장 19절 승천하사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by rabah153 2023. 12. 29.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46-48문에서 [승천하사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

1.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46-48문

제 46문: "하늘에 오르셨고"라는 말로, 당신은 무엇을 고백합니까 ?

: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땅에서 하늘로 오르셨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거기에 계시며, 장차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제 47문: 그렇다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

: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고 참 여호와이십니다. 그의 인성으로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으나, 그의 신성과 위엄과 은혜와 성령으로는 잠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제 48문: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마다 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서로 나뉜다는 것입니까?

: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성은 아무 곳에도 갇히지 않고 어디나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성은 그가 취하신 인성을 초월함이 분명하며, 그러나 동시에 인성 안에 거하고, 인격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2. 그리스도께서 승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사실에 관하여 사도행전은 분명하게 제자들이 이 사실에 대한 증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로나, 아니면 단 한 두 사람 정도에게만 알리시고 승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의도적으로 모든 제자들이 [이 사실에 대해서] 증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또 달리 제기될 수 있는 의구심을 해속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함께 다 불러 모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의 승천이 너무 중요하기에 어떤 의구심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승천의 중요성에 관하여 본 교리문답 역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떠나심이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만일 주님께서 [승천하시지 아니하시고] 우리 곁에 계셨더라면 더 큰 유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필시 이 사실을 설명해줄 수 있는 실례가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동안에, 네덜란드의 빌헬미나 여왕이 독일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습니다. 여왕은 영국으로 도망하였고 거기에서 네덜란드 백성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여왕이 영국으로 피난 나와 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여왕이 백성을 버렸다고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왕은 자기 백성을 내팽개치고 있지 않았습니다. 여왕은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서 영국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여왕은 마치 자신이 홀란드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영국에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를 남겨주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분은 지상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실 수 있는 것보다 하늘에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특별히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에 완전하게 성취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지 지상 사역을 성취하셨다는 것에 제한시켜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죄를 완전하게 속량하시어 구원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획득하신 구원을 적용하시는 사역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또 그리스도께서 이 사역을 하늘에서 수행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여호와시자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여호와의 신성과 위엄과 은혜와 성령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두 본성이 분리될 수 있습니까? 결코 이 두 본성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두 본성은 하늘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신적인 본성만 아니라 사람의 본성도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본성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적인 본성은 인간적인 본성처럼 동일한 제약으로 제한받지 않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람의 본성은 하늘에서 그의 신적인 본성에 인격적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적인 본성은 인간적인 본성을 초월하며, 그러하기에 땅 위에까지도 편재해 계십니다.

 

3.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심

혹자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비교했습니다. 1의 양은 한 컵(200)에 다 채울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컵에 1물을 채우고자 한다면 여러분들은 컵에 다 채우겠지만, 나머지 물은 컵 언저리로 넘치게 되어 사방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신적인 본성은 그의 인간적인 본성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의 신적인 본성은 인간적인 본성에 제한될 수 없습니다. 신적인 본성은 인간적인 본성을 채웁니다. 그러나 모든 곳에 흘러넘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께 자기 부하를 치료해주시기를 구한 백부장을 기억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 백부장의 집으로부터 약간은 멀리 떨어져 계셨을 때에, 그는 예수님께 자기 집에 더 가까이 오시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계셨던 곳에 머물러주시기를 요청하고, 자기 부하에게서 병이 떠나도록 명령 내려주시기만 바랐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육체적으로는 자기들과 떨어져 있었던 거리를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사실은 똑같습니다. 심지어 하늘로부터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모든 권능과 권세를 실행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의 감당할 수 없는 자비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 사역을 행하실 때에, 그분은 이 파산된 삶의 비참함으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천이 이런 사실을 바꾸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시련과 환란들을 똑똑히 알고 계시고, 그리고 그분이 그 당시에 하셨던 것과 똑같이 오늘날도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짐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지는 않으시나, 우리가 그 짐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영혼에 쉼을 주시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위격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어떤 뜻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을 때보다 이제 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가까이에 계십니다. 전에는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거하십니다(로마서 8:10; 갈라디아서 2:20).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계시며, 그리고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