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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장 18-19절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by rabah153 2023. 12. 22.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33문~제34문으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려고 합니다. 

 

- 목차 -

1.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33문~제34문

2. 여호와의 독생자 

3. 예수는 우리 주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33문~제34문으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동영상 

 

그리스도

1.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33문~34문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33문~제34문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두 가지 남아 있는 호칭 혹은 이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들” “주”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이델베르그교뢰문답 제33: 우리 역시 여호와의 자녀인데, 그분을 왜 여호와의 독생자라 부릅니까?

(Why is He called God's only begotten Son, since we also are children of God)?

 

: 왜냐하면 오직 그리스도만 본질로 여호와의 영원한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입양된 여호와의 자녀입니다

(Because Christ alone is the eternal, natural Son of God. We, however, are children of God by adoption, through grace, for Christ's sake).

 

하이델베르그교뢰문답 제34: 당신은 왜 그분을 우리 주()”라 부릅니까(Why do you call Him our Lord)?

: 왜냐하면 그분이 금이나 은이 아니라 그의 보혈로써 우리의 몸과 영혼을 우리의 모든 죄로부터 구속하셨고, 우리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여 주의 것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Because He has ransomed us, body and soul, from all our sins, not with silver or gold but with His precious blood, and has freed us from all the power of the devil to make us His own possession).

 

2. 여호와의 독생자 

이번 주의 날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두 가지 남아 있는 호칭 혹은 이름에 대해서 말해야 합니다. 아들라는 이름 말입니다아들이라는 호칭은 어떤 생각들을 우리 마음에 떠올리도록 합니다. 우리가 연상하는 개념들 중에는 성부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적용하는데, 비해서 다른 것들은 적용할 수 없습니다. 결코 적용할 수 없는 두 가지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원에 대한 개념 - 일반적인 아들은 자신의 존재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로 돌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존재하게 된 분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성자(아들)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성부이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성자이신 아들은 영원하십니다.

2) 권위 아래에 있다는 개념 -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권위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여호와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성자는 그의 신성(Divinity)에 있어서 성부께 종속되지 않습니다. 두 분은 권위에 있어서 동등합니다. 단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낮추어서 종의 형상을 취하셨을 때에만 그분은 아버지께 종속되셨습니다(2:6ff).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는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28).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마음에 떠오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에게 적용해야 하는 두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사성에 대한 관념 - 우리는 부전자전(Like father, like son)”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서 그들의 부모들의 어떤 부분과 같이 보이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녀들이 같은 자질과 기질들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합니다. 이렇듯 여호와의 아들도 아버지와 비슷합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에서 우리는 영광이 동일하고, 존엄이 동일하게 영원하시며아버지께서 계심 같이 아들이 그렇게 계시고, 성령이 그렇게 계십니다.는 표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아버지와 아들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은
창조되지 않으셨고 창조되지 않으셨고
불가해하시고 불가해하시고
영원하시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시고 전능하시고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이십니다.

 

이것은 성부와 성자가 모든 면에서 정확하게 동일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마찬가지로 성부와 성자의 차이점들 가운데 일부를 기록해놓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에게서도 나지 아니하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나셨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서 제8에서 우리는 아버지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원인, 기원과 시작이심을 고백합니다. 아들은 말씀이시며, 아버지의 지혜와 형상이십니다. 이처럼 우리 또한 이미 본 교리문답 제8주일에서 묘사되었던 사역에서의 차이점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2. “관계라는 개념 -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한 결속을 예상합니다. 이와 같은 관계가 성부 여호와와 여호와의 아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묶는 사랑의 관계 즉 사랑의 언약이 존재합니다. 성자는 성부를 사랑하시고(14:31), 성부는 성자를 사랑하십니다(17:24).

 

사도신경은 그리스도를 여호와의 독생자라고 불렀습니다. “낳다-났다-낳았었다동사는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다는 뜻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여 출산합니다(bears). 아버지는 아이를 낳습니다(begets).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마치 시간상 성부가 성자에 선행하는 것처럼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낳다는 용어는 아버지와 아들과 닮으심(likeness)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사람을 낳듯이, 동물은 자기와 같은 종의 동물을 낳듯이, 여호와의 독생자는 여호와이시자, 참 여호와이신 참 여호와이십니다.

 

모든 성경역본에는 해당 헬라어 단어를 독생자(only begotten)”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역본(RSV, NIV)에는 이 단어를 여호와의 유일한아들 혹은 하나이시고 유일한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1:14,19). 비록 이것이 달라 보인다고 하더라도, 차이점은 실제로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독생자라는 어구를 사용한 의도가 본 교리문답이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자녀됨과 비교하여 여호와와의 그리스도의 아들되심의 독특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여호와의 다른 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여호와의 자녀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호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영원하시고, 여호와의 본성적인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참 여호와에게 속한 참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을 인생이고 유한합니다. 우리는 자녀들로 지음받았습니다.

 

우리는 자신 스스로를 두 가지 다른 방식에서 여호와의 아들로 말할 수 없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여호와가 우리의 창조주시라는 빛에서 여호와의 자녀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여호와는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였을 때에, 사람은 더 이상 여호와의 형상을 담지하지 않았고, 그리고 그 관계가 파기되었습니다. 대신에 사람은 사단의 형상을 담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실제로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사단의 자식이 되었습니다(참조. 8:4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아들들의 위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의 자녀들로 입양되었습니다(참조. 4:5). 우리는 다시 여호와의 형상을 담지할 입지와 능력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성경은 심지어 신자들을 여호와께서 낳으신 자”(때로는 여호와에게서 난 자’)로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여호와의 형상으로 재창조되었습니다(벧전1:3; 요일3:9). 이것은 우리는 신자로서 우리가 여호와를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또 우리는 여호와의 자녀라고 말할 때에 일반적으로 언급된 여호와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관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이 효과를 생각할 때에, 만일 우리가 자녀들로 지음 받았다면, 그리고 만일 우리가 다시 여호와의 형상을 담지한 자로 지음받았다면, 그때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서 이 형상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거룩해야 합니다. 이 말은 부전자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녀들로서 그분에게 스스로를 복종함으로 우리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오는 풍성한 위로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을 동정과 사랑으로 돌보십니다(시편103:13). 여호와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상황에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여호와의 자녀로서 가장 큰 행복을 줍니다. 또한 주님(Lord)”이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이 말은 주인(Master)”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라는 호칭은 영어 단어입니다. 옛날에, 종들이나 혹은 노예들이 자기 주인을 , 나의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3. 그리스도는 우리 주님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태초에 여호와께서 우리 주님과 주인이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종들로 지음받았습니다. 여호와의 종이 된다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치욕적이거나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대단히 은혜로운 주인이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복리를 추구하셨습니다. 여호와는 우리가 당신을 위해서 일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제공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거운 짐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신 일은 아주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소위 자유와 더불어 유혹을 받았습니다.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자신들이 여호와와 같이 되어 좋고 그릇된 것을, 또 그들이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이 자유가 매력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슬프게도 그는 기만을 당했습니다. 사람은 결코 자신을 다스리도록 지음받지 않았고, 오히려 항상 여호와께서 사람의 통치자로 계셨습니다.

사단이 제공했던 자유는 실제적으로 사람을 속박하는 쪽으로 유도했습니다. 인류는 사단에게 죄 아래 팔려버렸습니다. 사단은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사단은 자기 권세 아래로 들어오는 사람을 파괴시키고자 하는 잔인한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불경건한 자들은 자신이 자유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자기 종교의 노예가 된 것으로 바라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흥미있는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예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죄의 노예이자, 사단의 종입니다. 사단은 그들 위에서 군림합니다. 사단의 거짓말을 통해서, 사단은 그들을 눈멀게 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속박한 사실을 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사단은 자신의 권세로 말미암아 그들을 악한 것을 행하도록 유인합니다.

사람은 결코 죄와 사단의 속박에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여호와는 이를 사단의 권세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여호와께 완전하게 다 속량할 때까지 사단의 권세 하에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석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완전하게 속량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완전하게 속량할 수 없기에, 그는 사단의 독재로부터 스스로를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죄와 사단에게 이런 노예로 내버려두는 대신에,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구속하시고 또 여호와의 종의 위치에 회복시키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구속 = 사서 돌려놓다) 여호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속량하신 것은 여호와의 은혜로운 뜻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금이나 은으로 속량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혈로서 속량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피로 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물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619절과 20절에서, 바울은 너희 몸은 너희가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殿)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셨고 또 우리를 사단의 독재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이 자유는 죄에 대한 자유가 아니라, 의에 대한 자유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회복되었습니다(참고. 6:5-6 / 롬6:16-18).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케 되어 우리가 다시 우리의 전 삶을 여호와를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33문~제34문 관련 성경 말씀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33문~제34문으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