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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16-17절 삼위일체 여호와

by rabah153 2023. 12. 17.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4문~25문으로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계시로 보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목차 -

1.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4문~25문. 

2. 계시로 보는 삼위일체 하나님.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1.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4문~25문.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 24문 : 이 조항들은 어떻게 나누어집니까?  (How are these articles divided)?

: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성부 여호와와 우리의 창조, 둘째, 성자 여호와와 우리의 구속, 셋째, 성령 여호와와 우리의 성화에 관한 것입니다

(Into three parts: the first is about God the Father and our creation; the second about God the Son and our redemption; the third about God the Holy Spirit and our sanctification).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 25문 : 오직 한 분 여호와만 계시는데, 당신은 왜 삼위, 곧 성부 ․ 성자 ․ 성령을 말합니까?

(Since there is only one God, why do you speak of three persons, Father, Son, and Holy Spirit)?

: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자신을 그의 말씀에서 그렇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이 구별된 삼위는 한 분이시요 참되고 영원하신 여호와이십니다

(Because God has so revealed Himself in His Word that these three distinct persons are the one, true, eternal God).

 

우리는 여호와의 존재하심과 그분의 어떠하심에 대한 그분의 본질, 즉 그분의 품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일은 우리가 행하기에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묘사하고자 할 때에는 언제나 우리가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은 몇 가지 점에서 다른 것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중요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에 대해서 말할 때에, 우리는 그분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호와 나의 여호와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 없고 그 수를 셀 수 없나이다.”(시편40:5) “그런즉 너희가 여호와를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이사야40:18)

2.  계시로 보는 삼위일체 하나님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은 우리가 여호와에 대해서 말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여호와께서 성경에 당신에 관해 계시하신 것에 우리 자신을 신중하게 제한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여호와에 대한 개념을 그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연인(自然人)이 행하는 것입니다. 자연인은 여호와를 자신을 반영하는 정도로 만들어버리거나 아니면 창조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듭니다. 로마서 1:23f에서 바울은 경건치 못한 사람들이 썩지 아니하는 여호와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부터가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반드시 여호와의 개념을 그려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성경으로부터 여호와의 개념을 그리려고 할 때에, 우리는 여호와를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우리는 유한하고, 여호와는 무한하십니다. 우리는 지식에 있어서도 제한되고, 여호와는 어떤 제한도 받지 아니하십니다. 여호와는 당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렇듯 우리가 여호와에 대해서 말할 때에,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토론할 때보다 더 진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말할 때에, 우리는 한 분 여호와로 계시는(make up) 세 위격에 대해서 말합니다. 여호와가 한 분이시지, 세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한 분 여호와는 세 신적인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십니다.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은  어떤 토대를 두고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성경에서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도하려고 하는 것처럼 삼위일체를 성경에서 이와 같이 정교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교리가 특수한 용어를 사용하여 필친 곳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교리의 토대가 없이 견고하게 설 수 없습니다. 이 교리의 진리는 성경에서 발견됩니다. 사람이 꿈속에서 만들어 낸 몽상이 아닙니다. 이 교리가 사람의 이해력을 초월한다는 그 사실이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 혹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은 사람의 마음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실제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사람은 이 교리를 부인하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동시에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교리를 채택해버립니다.

 

신약과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가 한 분이시라고 말씀하는 본문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6:4을 생각해봅시다.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여호와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 또한 고린도전서 8:4-6에서는 그러므로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여호와는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여호와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아타나시우스 신경에는(찬양의 책, pp.439-440) 여호와의 한 분이심과 일체성이 의미하는 바를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 분 여호와가 계시고 세 분 여호와가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성자와 성령은 권세와 영광과 위엄에 있어서 동등하십니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지음을 받지 아니하셨고, 이들 가운데 세 위격 모두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가 어떠하시면, 아들과 성령 또한 어떠하십니다. 이처럼 오직 한 분 여호와가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역시 한 분 신성 안에 삼위가 계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의 처음부터 우리는 여호와께서 당신을 복수로 칭하시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창세기1:26).”

 

게다가 우리는 창세기 1:2에서 여호와의 영이 창조 시에 수면을 운행하셨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63:8-10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이 본문은 특별히 오늘 우리에게 친숙해진 용어로는 아니지만, 구약 성경에 삼위일체가 언급되어 있는 한 곳입니다. 그분은 여호와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분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아들과 딸로 양자를 삼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또한 자기 앞의 사자(the Angel of His Presence)에 대해서 읽을 수 있는데, 이 분 역시 통상적으로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본문에 성령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신약 성경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신약에서는 [계시 역사의 점진성으로 인해서] 구약에서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자가 성육신하기 전에, 또 성령께서 모든 육체에게 부어지시기 전에, 삼위일체의 각 위격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자께서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위에 부어지셨기 때문에, 성경은 신성의 세 위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삼위의 사역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에 계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하늘로부터 여호와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비둘기 형상으로 그리스도 위에 강림하시는 성령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말기 즉 승천하시기 전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8:19).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들이 주의 날 제14 주일과 제20주일을 기록된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생각됩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가 신성의 세 위격이 이루신 그 일을 생각해볼 때에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와 성령이 모두 참 여호와시라는 지식으로 위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세 위격이 하신 일을 통해서 입니다. 본 교리문답 역시 삼위일체의 특별한 일들을 각 위격에게 돌릴 때에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1. 아버지시며 우리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이 고백은 여호와께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있게 만드시는 신적인 사역을 말합니다.

2. 성자시며 우리의 구속주이신 여호와

이 고백은 여호와께서 사람을 얽어매고 있는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건져내시고, 사람을 믿음과 사랑 안에서 당신께로 되돌려 놓으신 신적인 사역을 말합니다.

3. 성령이시며 우리의 성화주이신 여호와

이 고백은 여호와께서 사람을 부패와 타락을 정화시키시고, 새로운 사람과 거룩한 피조물로 다시 만드시는 신적인 사역을 말합니다.

 

성부께서 참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엄청나게 위로가 됩니다. 창조주 여호와로서 그분은 당신의 장중에 소위 말해서 온 세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창조 시에 만물이 그분의 통제 안에 있습니다. 아무 것도 우연하게 일어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뜻에 따라 일어납니다. 본 교리문답은 주의 날 제9주일과 제10주일에 이 사실을 더 진척시켜 나갈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여호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참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엄청난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이미 주의 날 제5, 6주일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구속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의존해 있습니다. 오직 그분의 신적인 능력을 통해서만이 그분은 온 세상의 죄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를 짊어지실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의 신성 때문에 그분의 희생제사가 우리의 큰 빚을 탕감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참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사람을 재창조하심에 있어서 해야 하는 사역은 천지를 창조할 때만큼이나 위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적으로 죄 가운데 죽어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셔야만 합니다. 그분은 파산된 사람의 마음을 고쳐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사람 안에 새로운 마음을 심으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의지를 자유롭게 하셔야만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루어낼 수 없는 일들입니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은 참된 여호와시며 그러하기에 우리 안에 이 일들을 쉽게 이루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와 구속과 성화의 각각 다양한 사역들을 신성의 세 위격 가운데 각 한 분에게 할당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역을 창조 사역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부께서는 창조 사역에만 가담하셨던 분이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3,4절로부터, 우리는 만물이 아들(말씀)을 통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생명의 저자이시며 수여자이신 성령께서도 창조시에 거기에 계셨습니다(창세기 1:2을 참조하라).

 

구속사역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던 그리스도에게만 대부분 돌려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역은 성자의 전유물만은 아닙니다. 성부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분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요한복음 3:16을 참조하라).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배에 잉태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님의 권능을 통해서이며, 이 권세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내내 그분을 강건하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선택한 백성들에게 적용시키는 분 역시 성령님이십니다(요한복음 16:14을 참조하라). 그분은 이들을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결속시키고 동시에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부여하십니다.

 

성화의 사역은 성령님께 할당하였습니다. 이 역시도 성령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사시고 또 그들을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로마서 8:9; 에베소서 3:17).

 

이 본문들로부터 우리는 삼위 세 위격 사이에 있는 본질적인 조화와 협력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 위격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시며, 세 위격은 당신의 사역에 있어서도 한 분이십니다. 이처럼 창조사역이나 구속사역 둘 다 우리의 삼위일체 여호와 여호와의 사역이십니다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4문~25문. 관련 성경 말씀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4문~25문. 설교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