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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5장 11-12절 성자 여호와와 우리의 구속

by rabah153 2023. 12. 20.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9-30문으로 예수님의 이름.예수님은 여호와. 유일한 구원자 예수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목차-

1. 예수의 뜻.

2. 예수님은 여호와.

3.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9-30문 관련 성경 말씀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9-30문 설교 동영상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9-30문ppt

 

하이델베르그교뢰문답 제29문: 왜 여호와의 아들을 예수, 곧 구주라 부릅니까?

(Why is the Son of God called Jesus, that is, Saviour)?

: 그가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그분 외에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 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Because He saves us from all our sins, and because salvation is not to be sought or found in anyone else).

 

하이델베르그교뢰문답 제30문.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소위 聖人에게서, 혹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도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Do those believe in the only Saviour Jesus who seek their salvation and well-being from saints, in themselves, or anywhere else)?

. 아닙니다. 그들은 유일하신 구주이신 예수를 말로는 자랑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구주가 아니든지, 아니면 참된 믿음으로 이 구주를 영접한 자들이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에게서 찾든지, 둘 중의 하나만 사실입니다

(No. Though they boast of Him in words, they in fact deny the only Saviour Jesus. For one of two things must be true: either Jesus is not a complete Saviour, or those who by true faith accept this Saviour must find in Him all that is necessary for their salvation).

 

예수그리스도

1. 예수의 뜻

우리 선조들은 예수라는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으로 이바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한글
Joshua Jesus Saviour 구세주

 

실제로 이 이름은 그의 육신의 부모가 지어준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실제로 우리의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수아(Joshua)라는 유대 이름의 헬라어 형태입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이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받았던 네 사람에 대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모세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진실로 자기 백성의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의 아들(a Son)을 위해 이 이름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에 의해서 그에게 이 이름을 지어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너희가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이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를 예수라고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가 예수님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신했습니다. 여호와는 이 이름을 우리를 위해서 그의 아들에게 지어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예수님이 참으로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무엇에서 구원하십니까? 이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에게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1:21 참조)고 선포했던 출생고지에서 분명해졌습니다. 천사들이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로마의 권력에서부터 자신을 구원할 정치적인 구세주를 대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 나라를 로마에서 정치적으로 건져내는 것이 예수님의 과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단지 지상적인 권세에서만 아니라 영적인 권세들 즉 죄와 죽음의 속박에 갇혀 있던 상태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를 죄의 비참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도 사실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신 후에만, 우리의 비참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비참의 원인이 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죄가 제거될 때에, 삶의 비참이 제거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오신 첫 번째 목적은 우리를 우리의 비참에서 건지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사역의 첫 번째 목적은 우리를 우리의 죄 가운데서 건져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도 예수님의 구원사역의 첫 번째 목적에 대한 시각을 상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삶의 비참으로부터의 건짐을 위한 기도가 우리 죄로부터 건짐을 위한 기도보다 종종 더 열정적입니다. 우리가 중병이나 소모성 질병을 경험할 때에, 우리는 이 질병에서 건져주실 것을 열정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우리가 죄 용서를 위한 기도가 기도 맨 끝에 단지 짤막한 경구로 끝내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쉽게 죄 가운데서 구원을 위한 큰 필요를 간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우리의 비참에서 구속하신 분으로서 예수님께 우리 믿음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죄와 비참 둘 다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항상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only) 구세주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외에 우리의 죄와 비참으로부터 구속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절대적인(exclusive) 구세주이시며, 그러나 예수님은 포괄적이고 완벽한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 외에 구세주가 없으며,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에게 덧붙일 다른 구세주를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과 혼의 구속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발견합니다.

 

2. 예수님은 여호와

주의 날 제6주일에서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가 참 여호와시며 참 사람이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왜 우리 구세주가 여호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강조합니다.

 

1. 우리의 구세주는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선택받은 여호와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호와가 구속받게 하시기 위해서 선택하신 사람의 수효를 “144,000이라고 합니다. 너무도 많은 죄의 무게가 단지 어떤 피조물이 짊어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우리 구세주는 여호와의 진노의 무거운 짐을 짊어 질 수 있는 신적인 능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2. 게다가 만일 한 사람(Man)의 죽음이 많은 사람의 죄를 위한 속량으로 충분해야 한다면, 우리 구세주의 죽음은 충분한 가치와 진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해서 우리 구세주는 참된 여호와이시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아들의 죽음은무한한 가치와 진가를 가지고 있고, 온 세상의 죄를 속량하기에 충분하게 넉넉한데왜냐하면 [죽음에] 내어주었던 분은여호와의 독생자이기 때문이다(돌트신경 ,3,4,Book of Praise,pg.545,546).

 

구원은 유일한 참되고 의로운 사람이었던 이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여호와이셨던 분에게서 나올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전 구약성경에서 걸쳐 공포되어 있습니다. “너는 행복한 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이같이 얻은 자가 누구뇨?”(33:29)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라.”(45:17)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여호와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었느니라.”(13:4).

 

우리는 앞에서 여호수아(이 여호수아라는 이름에서 예수라는 이름이 파생되었다)라는 이름이 구원자를 의미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더욱 바르게 정의하자면, 이 말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뜻입니다(히브리어에서 Jo 접두어는 여호와라는 말을 생략한 것이다. 나머지 shua라는 이름은 구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이다.). 심지어 예수(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구원이 여호와의 사역이지,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따라, 예수라는 이름에 대한 지시어는 임마누엘 예언의 성취로 보여집니다. 마태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21-23)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이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라고 불렸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참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이 말은 육신으로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분이 완벽한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확신케 합니다. 우리는 그 외에 다른 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완벽한 구세주이시기 때문에, 본 교리문답은 우리에게 성인들의 도움을 호소하는 것(호소한다는 것은 기도 속에서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종교개혁 이전에 행해졌던 일상적인 행습이었습니다. 1564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공포된 성인들의 권고(Injunctum Nobis)”에서 로마교회는 이 행습을 옹호하였고 또 로마 교회 회원들 이 행습을 계속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이 선언문에서 로마 교회회원들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성인들이 존경을 받아야 하고 또 호소되어야 하고,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서 여호와께 기도드려야 한다고 믿는다고 공언했습니다. 동일한 공의회의 다른 칙령에서 우리는 여호와에게서 그의 아들 오직 우리의 구속주이시며 우리의 주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총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겸손하게 성인들에게 청원하고, 또 성인들의 기도를 의지하고 그리고 성인들의 효과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선하고 유익한 일이다.”라는 글귀를 읽을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본 교리문답은 성인들에게 청원하는 것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영예롭고도 완전한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로마교회는 말로서는 이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효과적인 도움에 관한 로마교회의 가르침을 더 가까이에 다가가서 살펴볼 때에, 이 가르침은 성인들이 우리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서 여호와와 중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인들은 단지 죽을 몸을 가진 우리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로마 교회 안에서 성인들의 숭배 역사를 살펴 볼 때에, 우리는 마리아가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경쟁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죄 없이 태어났듯이, 로마교회 역시 마리아도 죄 없이 잉태되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삶에서 일관되게 죄에서 자유로웠듯이, 로마교회는 또한 마리아가 죄 없는 영혼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 스스로를 성별하셨듯이, 로마 교회 또한 마리아가 그녀의 아들을 여호와께 성별했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심지어 마리아가 인류의 공동의 구속자(co-redeemer)라고 뻔뻔스럽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마치 죽은 뒤에 부활하여 하늘로 들리워지셨던 것처럼, 로마 교회는 마리아 역시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하늘로 들리워졌다(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승천)고 가르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교황 피우스 10세가 전 세계의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 한 통과 교황 베네딕트 15세의 사도적인 서한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둘 다 20세기에 있었던 서신입니다.

 

마리아와 그리스도 사이에 고통과 자원하는 이런 연합의 결과로서, 마리아는 실낙원의 회복자가 되기에 가장 존경받을 만한 공로가 있다. 또 그러므로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과 당신의 피와 함께 우리를 위해서 얻으신 모든 은사들을 나누어 주시는 자가 되었다.마리아는 모든 사람들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가장 친밀하게 연합하여 거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의 사역을 위해 자신의 협조자로 마리아를 선정하셨다. 마리아는 은혜들을 나누어주는 탁월한 중재인이다.”

 

“[마리아]는 고난을 받았고 또 거의 그녀의 고난받고 죽으신 아들과 함께 죽었듯이, 마리아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녀의 아들에게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권리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여호와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마리아는 할 수 있는 한 자기 아들을 희생 제물로 드렸다. 이렇게 하여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인류를 구속하였다고 바르게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로마교회가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라고 공언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교리는 이와 반대됩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공모자(Christ's associate)입니다. 사람은 단지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받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하고 나누어주는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서 구원받습니다. 이와 같은 진술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충족성을 부인하는 것이 지나지 않습니다.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9-30문 관련 성경 말씀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9-30문 설교 동영상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29-30문 ppt

29문~30문 성자 하나님과 우리의 구속.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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