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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6장 6-14절 분노를 수용하는 방법

by rabah153 2024. 6. 23.

- 목차 -

 

1. 사무엘하 16장 6-14절

2.  분노를 수용하는 방법

3. 기도 

*  사무엘하 16장 6-14절  분노를 수용하는 방법 설교 동영상 

 

1. 사무엘하 16장 6-14절

6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14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2.  분노를 수용하는 방법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그 분노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 그 분노를 수용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분노를 해결하는 수용의 모습은 바로 무엇이냐 그 분노를 나에게 일으키게 하는 주체를 그냥 사람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여러분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 그 일들은 결코 어떤 것 하나 우연한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고 하나님의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 때로는 내 마음을 분노케 하는 상황들과 그러한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이러한 것들이 결코 우연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우리가 알 수 없고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 오늘 다윗은요, 그것을 보았던 것이 다윗도요 지금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을 전투 그 시무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 그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가뜩이나 이제 아들의 배신으로 인하여 반역으로 인하여 왕의 모습들을 다 잃어버리고 이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그 다윗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분노가 일으키게 되는 상황인데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저주하는 그 시모의 모습을 보면서 다윗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겠어요. 

어떻게 좋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자신의 삶 속에 이루어질 수 있는 분노의 감정을 올바르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딱 1가지 이러한 심오의 저주까지도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라는 그 분명한 모습이 있었기에 그 모든 분노까지도 다윗은 온전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여러분 때로는 누군가가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때로는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때로는 그것으로 인하여 내가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들이 일어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 현실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믿음이라는 것이 있어요.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 우리의 눈에 보여지는 대로 모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의 개입과 하나님의 뜻 안에 바라볼 수 있는 시선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그 현실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되느냐 이것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고자 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단순히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의 말이 단순히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고. 

그리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말씀 무슨 인지를 우리의 삶 속에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자세가 있을 때 우리는 그 분노를 온전하게 수용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여러분 모든 인간이며 감정의 존재입니다. 부인할 수 없어요. 우린 이성적인 부분들보다 감정이 앞서고요. 그리고 우리의 믿음적인 부분들보다 육체적인 부분들이 앞설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삶 속에 여러 가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분노하게 되는 상황들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것은 우리 앞에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뒤에 우리의 모든 인생의 삶을 주장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우리의 삶 속에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는지를 우리의 삶 속에 깨닫고 그것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단순히 그것을 미움의 감정과 분노의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향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을 우리의 삶 속에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하는 모든 성조들이 인생의 삶 속에 여러 가지 아픔과 상처의 순간들이 있다. 할지라도 기억하십시오. 

그 모든 것들이 내 삶에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음을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기억하실 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분노의 감정들을 온전하게 수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두 번째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분노를 수용할 수 있는 또 1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분노를 잃게 되는 상황들이 때로는 내 삶 속에서 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 된다할지라도 그것이 만약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의 분명한 갚으심이 우리의 삶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여러분 오늘 다윗의 모습을 보면 다윗이 그러한 고백을 합니다. 2절에 말씀해 보십시오. 12절의 말씀을 보면 혹시 여왕께서 나의 원턴함을 감찰하신 님이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내게 갚아주시리라고 얘기하는데 무엇으로 내게 갚아주실 것을 말하게 됩니까? 선으로 갚아주실 것을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다윗은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뭐라고 얘기하느냐 지금의 내 모든 원통함을 하나님이 다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저 심우의 저주까지도 반드시 선한 것으로 내게 갚아 주신다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단 때로는 그러한 분노의 감정이 이루어지는 상황들을 봐주하게 되게 되면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저조하고 내 마음 아프게 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모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누가 기쁨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우리의 마음이 상하죠.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분노의 감정들을 온전히 수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모습이 있어야 되느냐 그것까지도 누가 갚아주신다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는 그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것으로 그 모든 것들을 갚아 주신다 그러한 마음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그 분노의 방정으로 누군 하나를 헤아려 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복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감정도 누구께 맡길 수 있느냐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거지 하나님께 맡기면 누가 해결해 주십니까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 여러분 내가 아무리 분노의 감정으로 내 마음속에 있는 그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보복했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내 마음이 편할까요? 결코 그러지 않아요. 믿음의 마음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더 불편함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모든 부분들을 우리의 삶 속에 수용하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바빠주실 것을 우리의 삶 속에 믿는다면 우리는 내 마음의 평안을 찾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성취를 우리의 삶 속에 보게 하신다는 것이 여러분 하나님은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믿으십니까 아버지가 자녀들의 아픔의 모습을 보시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제가 애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건 딱 마찬가지 그것은 바로 무엇이냐 자녀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게 되면 차라리 그거를 내가 감당하고 싶고 그러한 사람들을 그러한 자녀들에게 그러한 고통을 주게 되면 나에게 그러한 고통을 주는보다 더 믿고 더 그 사람에 대해 보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에요. 그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한 마음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때로는 여러 가지 억울한 일로 때로는 여러 가지 일로 우리의 마음속에 상처를 입고 그러한 일을 해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있으신 게 아니에요. 그 부분들이 분명히 잘못됐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무엇이 있게 되느냐 가프심의 부분들이 분명히 있게 됩니다. 여러분 이 심의의 저주의 부분들을 보게 되면 결국 결국에는 이 심의가 나중에 이러한 다윗의 제주에 대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성경해 보게 돼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우연이에요. 아니에요. 하나님을 갚으시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인가요?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그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갚아주신다는 것이 여러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야곱이라는 인생을 보게 되면 야곱이 결국에는 그 형과의 갈등 속에서 갈등 속에서 자신의 집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외삼촌이었던 라반의 집으로 가게 되죠. 그리고 그 라반의 집에서 무려 몇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까? 20년의 시간을 보내게 돼요. 그런데 20년의 시간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그 20년의 시간들이 너무나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처음에 라만이 약속했던 모든 것들과 그 야곱에 행했던 모든 것들이 다 달라지게 됩니다. 처음에 약속한 모든 것들이 다 흘려지고 오히려 야곱의 인생을 속이게 되는 그러한 일들이 라반이 벌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 20년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게 됩니까? 사실은 이 야곱이 사랑했던 이 라반의 딸은 누구였습니까? 레아가 아니고 라엘이었어요. 그런데 이 라반은 결국에는 이 레아까지도 야곱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야곱을 속이게 되죠. 그래서 7년 동안 야곱이 라엘을 얻기 위하여 라발의 일을 위하여 수고해왔지만 그에게 라엘을 준 게 아니라 레알을 주게 되고 그 이후에 7년의 시간들을 더하여 라엘까지 주게 그리고 나머지 4년은 무엇을 위해 살았습니까? 야곱이 그의 라반의 가축들을 돌보는 일에 사용하였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야곱의 섬김을 통해서 라반의 인생을 굉장히 부유하고 풍성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 따라 이제 라반의 곁을 떠나려고 할 때 그 라반이 막게 되죠.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그 라반의 인생의 삶 속에 그동안 다윗 세계에 행했던 모든 것들을 가꾸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야곱이 라반을 떠나게 됐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의 아내들과 얘기를 다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과 얘기해서 이제 도주하기로 결정을 하게 되죠.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야곱의 인생의 삶을 빈손으로 보내시니 아니죠. 그전에 어떠한 사건이 있게 됩니까? 라반의 가축들 가운데 이 야곱이 나반에게 제안을 하게 됩니다. 뭘 재현하게 되느냐 멀쩡한 양들이 아니라 점 있고 알롱진 것들 이러한 것들이 태어나면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갖겠습니다. 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정말 야곱을 통하여서 마치 그동안에 라반이 반역했던 모든 대가를 그의 인생의 삶을 채우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라반의 가축들 가운데 가장 건강한 것으로 그의 인생의 삶을 채우게 하시고 독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거죠. 여러분 이 모든 것이 우연 같습니까? 우연 같아요. 아니에요. 누구의 갑부심입니까? 하나님의 갑부심이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삶은 내가 갚지 않아도 누가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을 갚아주십니까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이 내가 행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갚아 주세요. 우리의 모든 마음과 중심을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갚아주신 거지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죠. 

우리의 삶 속에 이 믿음의 모습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때로는 우리의 감정이 불타올라 분노의 감정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 분노의 감정으로 우리의 삶 속에 실수하는 인생의 순간 속에서도 그 분노를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분노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2가지가 있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 번째로는 바로 무엇입니까? 모든 분노를 일으키는 주체를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향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으로 받아들인 것이고. 

두 번째

우리의 삶에 모든 것은 누가 맡으신다?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사실을 우리의 삶 속에 믿을 때 우리는 그 마음의 분노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죄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의 삶 속에 꼭 기억하시고

인생의 삶 속에 때로는 분노가 이루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믿음의 태도를 통하여 잘 분노를 수용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내 삶에 더 놀랍고 은혜로운 삶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3.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마음의 감정인 분노에 대한 부분들을 살펴보게 하시고

 우리가 그 분노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를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그 분노의 감정들이 우리의 삶 속에 치우를 때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도심이 필요함을 고백하오니

때로는 우리의 삶에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과 상황을 마주할 때 그것을 단순히 사람의 모습으로 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시는 개입과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우리의 삶 속에 분명히 인지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더 나아가 그 모든 마음의 분노를 일으키는 모든 것을 내가 아닌 하나님이 바꿔준 그 분명한 믿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 그 분노를 수용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분노로 나타날 수 있는 실수하는 인생의 삶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 분노를 잘 수용하여 그것을 통해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 삶의 은혜를 풀어주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한 주간의 삶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걸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  사무엘하 16장 6-14절  분노를 수용하는 방법 설교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