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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 3-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죽으셨다

by rabah153 2023. 12. 25.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40문~42문으로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목차 -

제40문: 그리스도는 왜 죽었는가?

제41문: 그리스도는 왜 장사되었는가?

제42문: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셨는데 그리스도인은 왜 죽는가?

 

그리스도의 죽음

하이델베르그교뢰문답 제40문: 그리스도는 왜 죽으셨는가?

: 여호와의 공의와 진리 때문에, 우리의 죗값은 여호와의 아들의 죽음 이외에는 달리 치를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사형언도를 받기 이전에, 매우 심각한 죄를 저질러야만 합니다. 모든 범법자들이 처형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혹은 생명의 신성함이 파괴된 곳에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 형법체계에서, 수많은 범죄자들이 다년간 수감 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한 뒤에 풀려납니다. 이제 본 교리문답이 묻고 있는 질문은 그리스도는 왜 죽으시기까지 낮아져야 했습니까?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더 가벼운 형벌을 짊어지실 수 없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전 생애 동안 고난을 받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전 생애 동안 고난 받으신 것으로 죄 값을 치르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리스도께서 줄곧 십자가에 가셔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왜 여호와의 심판이 이토록 가혹합니까?

사람이 저지른 죄는 여호와의 지고한 위엄에 대항하여 저질렀던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내 이웃에 대해 잘못을 저질렀다면, 내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잘못을 저질렀던 것과 같은 혹독한 심판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리문답은 여호와의 지고한 위엄에 대항하여 저지른 죄는 극형으로 즉 몸과 영혼으로 영원한 형벌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공의는 이렇게 처벌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단지 여호와의 공의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호와의 진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는 당신의 말씀을 깨뜨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만들이 그들이 불순종한다면, 분명히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처럼 죄 값이 견고하게 죽음으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방법으로써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든지(우리의 죄 값은 우리가 영원토록 받는다 해도 다 지불할 수 없습니다),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자기 죽음이라는 방법으로써 치르셨던 그 죄 값을 받기 위해서 참된 믿음에 의해서 그리스도께 돌아서든지 해야 합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죄 값을 치르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함으로써 치러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죽으시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하이델베르그교뢰문답 제41문:  그리스도는 왜 장사되었는가? 

: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그가 진정으로 죽으셨음을 확증합니다.

 

그렇다면 본 교리문답은 그리스도는 왜 "장사" 되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주어진 답변은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그가 진정으로 죽으셨음을 확증합니다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병사가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쏟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즉각적으로 살아나셨다면,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실제로 죽었는지 여부에 대해서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장사(葬事)되심은 그리스도께서 진짜로 죽으셨다는 사실에 대해 더 나은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시신을 매장할 때에, 시신을 준비하는 과정(씻고 난 다음, 향료를 섞어 마른 천으로 몸을 감쌉니다)이 있습니다. 니고데모와 요셉은 그리스도의 몸이 차가워지고 굳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부 색깔에서 죽은 자의 회색색조를 띠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이 과정이 장사하는 과정에 포함되었던 관계로,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었다는 사실을 교회에 증명하였습니다.

 

비록 본 교리문답이 이러한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사를 그리스도의 비하하심의 마지막 단계로 보아야만 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저주를 사람에게 선언하셨을 때에 여호와는 사람이 자신이 창조되었던 바 먼지로 되돌아간다고 선언하셨습니다(창3:19). 사람들이 매장되었을 때에, 그들의 몸은 적기에 분해되어 먼지로 환원됩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육신이 부패를 보지 않았더라도(16:10; 2:3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장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을 매어놓았던 저주의 상징으로 장사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데,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했습니다(롬6:3,4). 이것은 세례의 상징들 중에 하나입니다. [세례 받을 때에] 물에 침수하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례라는 표징 안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서 바치신 죄 값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죄 값은 우리가 치른 죄 값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이라는 심판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에로 옮겨졌습니다.

 

하이델베르그교뢰문답 제42문: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셨는데 그리스도인은 왜 죽는가?

: 우리의 죽음은 자기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며, 단지 죄 짓는 것을 그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가 치른 죄값에 참여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우리도 왜 여전히 죽어야 합니까(Since Christ has died for us, why do we still have to die)? 그리스도가 치른 죄 값이 충분하지 않는 것입니까? 참으로 그리스도가 치른 죄 값은 전적으로 충분하고도 완벽합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결코 죄값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죽음은 두려운 어떤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죽음은 그 쏘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신자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죄의 형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신자들에게 죽음은 완전한 지옥의 상태로 들어가는 관문일 뿐입니다. 이생에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 옛 본성과 더불어 괴롭힘을 받습니다. 우리의 부패성이 아직 우리에게서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이생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큰 슬픔과 불행을 일으키는 죄를 여전히 저지릅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우리의 죄성과 우리의 온갖 죄된 경향성을 뒤로 한 채 떠나갑니다. 우리는 먼지가 묻은 더러운 옷을 같은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서 완전한 가운데서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이생에서 질병과 물리적인 흉함과 같은 죄의 비참한 결과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생에서 상당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그러나 죄의 이 모든 비참함의 결과는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는 문에서 뒤에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