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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장 1~12절 전도의 열매

by rabah153 2024. 7. 12.

본문 : 골로새서 1장 1~12절

제목 : 전도의 열매 

 

- 목차 -

 

1. 골로새서의 위치

2. 골로새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고 부흥했을까요?

3. 중보 기도

* 골로새서 1장 1~12절 전도의 열매  동영상 

 

오늘은 전도의 열매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골로새서의 위치

신약성경은 1.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 ) 2. 역사서(사도행전)

3. 서신서(로마서~유다서) 4. 예언서 (요한계시록)

 

골로새서는 = 서신서 저자 = 바울 (원저자 = 성령님)

대상 = 골로새 교인 (골로새 교회 설립자 = 에바브로 7 )

 

골로새 지역 =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서 오가는 무역로의 요충지로

돈이 많고 우상숭배와 특별히 이단이 영지주의자의 영향이 있었어요

영지주의 = 육은 더럽고 영적인 것만이 깨끗한 것 = 방임주의와 금욕주의

골로새 교회는 금욕주의 본산지입니다.

 

에베소서 =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설명하고 있어요

골로새서 =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누구시냐에 초점이 있는 거예요.

 

2.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3절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에 너희는 골로새 성도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에 대한 감사가 있어요.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만난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라 부르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는 대단한 것이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누구예요?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이방인 지역의 개척교회 초신자들에게 우리라는 표현을 써요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라는 거예요. 바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 봐요. 사도바올의 입장에서 우리라는 표현은 혁명적 고백입니다. 바울은 정통 바리세파요 가말리엘 문화의 정통 유대인 바울에게 이방인은 개돼지와 다를 바가 없었어요. 그런데 복음을 듣다가 은혜를 받고 돌아가서 설립한 생성된 지 얼마 안 되는 조그만 교회 이방인들에게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라는 표현을 써요 그러니까 사도바올이 뭐가 바뀐 거죠. 이 민족의식이 바뀐 겁니다. 이렇게 민족의식이 바뀐 근거가 뭘까요?

은혜를 받고 성령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첫째, 민족과 민족의 담이 무너져요 피부 색깔과 혈통이 중요하지 않아요 창세기 1 26절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졌다고 하십니다. 선교의 가장 중요한 출발 지점는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 지점입니다. 아프리카에 살던지, 중동에 살던지, 국경의 담과 민족의 담과 혈색의 담이 의미가 없어요 아무 것도 가로 막을 수가 없어요

어디든지 복음이 필요해요 하나님의 복음을 들어야 되는 영혼이 있다면 산 넘고 물 건너 강 건너 갈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것이 복음의 근거이고 선교의 출발지점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사도성의 기원이 되고 선교의 출발 지점입니다. 얼굴도 보지 못한 골로새 성도들에게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여러분 항상 우리가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이 지점이 근거가 돼야 돼요. 이 거리의 집 없는 분들을 만나더라도 항상 그리스도인의 인식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형제로 깊숙이 내 가슴에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2. 골로새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고 부흥했을까요?

에베소 지역에 바울이 복음 전파

아시아 전역에서 모여 말씀을 들음  에바브로  고향에 돌아가 세움

 

3절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왜 감사하느냐?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뭘 들었다고 돼 있죠? 사랑을 들었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믿어요. 그런데 그 믿음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확장돼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에바브라를 통해서 받았죠 에바브라는 누굴 통해서 들었어요. 사도바울를 통해서 들었어요. 그리고 에바브라가 말씀을 마음에 담고 고향에 돌아가서 골로새 사람들에게 증거를 한 겁니다. 그 사람들이 그 복음을 믿고 듣고 깨닫고 믿었어요. 믿고 나서 그것이 믿음으로만 고착되어 화석화되고 머문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제대로 받았어요. 그래서 믿음이 이웃에게로까지 확대되는 거예요.

 

5절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믿음이 성도들에게 뭘로 확대됐죠? 사랑의 증거로 확대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 믿음과 사랑을 떠받쳐 줄 수 있었던 것이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뭘로 말미암음이니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골로새 성도들이 내 주장을 내려놓고 믿음을 가지고 내 물질적인 이익을 내려놓고 이웃에 대해서 손을 벌려주고 구제를 하고 사랑으로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소망은 단순한 바램이 아니라 곧 너희가 전에 보금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에바브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들은 말씀이 뭐가 형성된 겁니까? 소망을 이루었어요.

이 경이로운 하나님의 경영과 역사의 주체자로서 여러분들이 쓰임 받고 동원될 것입니다. 학성장로교회 공동체로 묶어주셨으니 동반자로서 우리는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뭘 가져다 줬어요.

소망을 가져다 줬어요.

그 소망이 믿음으로 견고해지고, 그 믿음이 아무리 수많은 웅덩이와 가시덤불과 가시밭길이 가로막아도 그 믿음으로 뚫어내고 앞으로 앞으로 가는 거예요. 믿습니까?

할 마음이 확실하면 방법이 생기고 길이 뚫립니까 안 뚫립니까 뚫려요 뚫려요 반드시 그렇게 돼 있어요.

그리스도로 충분하고 그 분의 말씀으로 충분하다는 얘기를 이렇게 하는 거예요. 믿습니까?

참된 교회의 지표는 그 밑바닥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교회는 충분하다는 확신을 공통의 고백으로 갖고 있어야 돼요. 이 고백은 나이를 먹어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복음으로 충분하고 복음의 주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다는 이 고백을 더욱 견고히 해야 됩니다.

 

6절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들려지고 깨달아지고 열매를 맺어서 온 천하에서도 자란대요

창세기 1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70명의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들어가서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애굽에서 나옵니다.

복음의 씨앗이 던져지고 심어져서 그것이 열매를 맺고 사랑으로 드러나고 믿음으로 순종되어서 민족을 넘고 담장을 넘어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7절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첫째는 그리스도 안이라는 공간이에요. 두 번째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골로새서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도시였어요. 그런데 복음이라는 씨앗이 던져져서 그 씨앗이 열매 맺고 자라고 번성함으로써 도시가 바뀌지 않습니까? 복음만이 공간을 살리고 일터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시대를 살립니다. 그 외에 어떤 것도 이 시대를 새롭게 할 수 없어요. 믿습니까? 여러분들이 그 말씀에 붙들린 소망을 가지고 또 한주를 당당하게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중보 기도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첫 번째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 규칙적인 기도를 했어요 백성2번기도 제사장 3번기도

두 번째 우리도 듣던 날부터 = 그들의 필요가 무언지를 알고 기도했어요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요한복음 14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 안에 가득 채워진 곳으로 그 사람을 움직여요.

그 사람 안에 무엇으로 가득 채워졌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움직여요.

 

10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하나님은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가면 성령님이 우리의 변호자가 돼서 항상 우리와 일상의 고단한 삶의 자리에도 내가 저 어둠의 구석에 집어 던져지는 혹독하고 수치를 당하는 자리 일지라도 하나님은 거기까지 동행해 주시는 분이심을 이번 주간도 믿으셔야 돼요. 믿습니까? 그러니깐 여기 함께 합당하게 행하여라는 말은 사도 바올이 그의 서신에서 아주 자주 쓰는 용어예요. 합당하게 행하라 그니까 우리가 신분이 있고 수준이 있죠. 신분이 됐다고 수준이 따라오는 건 아니에요. 그렇죠.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입어서 그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이 바뀐 거예요. 근데 신분이 바뀌었다고 수준이 갑자기 신분이 바뀐 것만큼 빛의 속도로 바뀌나요? 그렇지 않아요.

 

이제 신분이 바뀐 만큼 수준이 바뀌는 데에는 매우 지난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항상 하나님은 과정을 통해서 즉 역사라는 시공간을 통해서 그 분의 뜻을 만들어 가십니다. 또 보여주십니다. 수준과 신분이 하나가 되려면 우리는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척 기도의 자리로 가지는 법은 없어요. 왜 인간은 영적으로 본질상 이렇게 익숙한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는 애굽의 삶이 훨씬 익숙해요. 그러니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툴툴거리고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거예요.

 

그 애굽의 독소를 다 광야라는 공간에서 하나님이 뽑아내죠 그리곤 그제서야 가난한 땅에 여수호수아를 앞세워 들어가바니다. 그 과정마저도 구주의 은혜 없이는 들어갈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 우리라는 뜻입니다. 오늘 그 얘기를 사실 사도바올이 마지막 절에 하죠. 자 성경을 다시 보세요. 합당이 행하여 범사히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어떻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어떤 목사님의 설교든지 내 의식과 이성 속에 차곡차곡 채우는 마음으로 듣다 보면 그게 당장은 가슴으로 와닿질 않고 감동이 밀려오지 않을 지라도 살면서 언젠가는 끄집어 내지게 됩니. 일단 들어두자 그게 채우는 거예요. 믿습니까? 채우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목사님이 하셨던 그 말씀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이게 어느 삶의 현장에서 툭 불거져서 걸러져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들어둬야 돼요. 근데 우리는 일단 이게 나한테 감동이 되냐 내 사정과 적합하냐? 여기에만 듣는 귀의 초점이 채널이 매몰돼 있으면 설교를 길게 우리가 못 듣는 거죠. 단선적으로 이해를 하는 거죠. 일단 들어둡시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1절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이 말씀을 왜 했을까요?

우상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골로새 지역이 골로새 성도들의 합당한 삶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나라가 열매로 나타나도록 원하는 거예요.

모처럼 은혜받고 들어가면 꼭 누군가가 건드려요 여러분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사실 사도바울는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 말씀을 들은 대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견뎌야 되는 일이 있고 오래 참아야 되는 일이 있단다 그 얘기예요. 성경을 그런 차원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견디라는 것은 내 쪽에 내 쪽의 인내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저 멀리 종말에 나타날 실제적인 영광 그 소망에 매달려 있는 상태를 얘기합니다. 그 소망에 매달려 있는 상태 그러니까 내가 견디는 힘이 아니고 소망이 나를 잡아끄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 오래 참음은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1걸음 1걸음 뗄 때마다 장애물도 나오고 돌부리도 나오고 가시덤불도 나와서 내게 수많은 경란과 갈등을 일으켜요 견딜이라는 것은 먼 시선의 문제라면 이 오래 참음은 순간 순간 1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를 힘겹게 발목을 잡아채는 현실적인 장애물들과 갈등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 119105편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 기쁨의 소망이 확고한 사람은 오래 견딘 오래 참음 이것을 기쁨으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매일매일 말씀이 약속하는 그 기쁨의 소망이 매일 말씀을 읽는 가운데 선명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12절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 속에 나올 때 무슨 재앙이 있었습니까? 어둠의 재앙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둠은 우리의 옛 삶의 그림자예요. 이건 단순히 빛과 어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과거의 모습이에요. 근데 그 어두운 가운데서 우리를 빛으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뭘 삼으셨죠 자기백성 성도를 삼으셨어요. 이유는 기업을 주시려고 가나안이라는 유업을 주셨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똑같은 위치에 영접하여 부름받은 이방인들에게도 공유된 유업이라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는 겁니다. 성도 빛이라는 것은 그 심판의 자리에서 어둠이라는 심판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 어린 양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백성이 되고 성도가 되었다는 뜻이고 나아가서 그 기업을 같이 유산으로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약속을 하는 거예요. 믿습니까? 성도의 기업 그 소망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늘 함께 공유되는 축복으로 흘러가기를 소원합니다.

 

* 골로새서 1장 1~12절 전도의 열매  동영상